5.18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8월 13일 현재, 불과 20일만에 관객 5백만 명(!)을 돌파했다. 인터넷에서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다들 눈시울을 붉히며 극장문을 나섰다고 한다. “정말로 한국 군대가 그런 일을 벌였어요?”하고 궁금해 하는 질문들도 인터넷에 많이 올랐다. 앞으로도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줄을 이을 거라고 하니, 그 점을 높이 산다면 이 영화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흐뭇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접는다면 너무나 안이한 수박 겉핥기 식의 비평에 그치게 된다. ‘폭압적인 신군부가 죄 없는 민중을 함부로 짓밟았다. 그래서 양순하기 그지없는 민중이 목숨을 내걸고 저항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역사 교육이 온전하게 이뤄진 것일까? 더 깊은 깨우침을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에게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변란이 일어난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투쟁에 나선다....
위에서 옮긴 줄거리에서도 쉽게 간파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영화 문법을 충실히 따랐다. 택시 기사와 간호사의 영롱한 사랑 이야기! 이에 대해 감독 이지훈은 많은 사람이 맛보게 하는 데는 ‘짜장면’이 으뜸 아니냐고 애써 변명한다(경향신문 인터뷰). 단지 멜로드라마라 해서 ‘낙제’라 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러저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는 식으로 후자에 방점을 찍는 것이 온당한지는 또 다른 판단거리다. “수많은 시민이 ‘광주항쟁’을 추체험으로라도 겪고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의 눈물을 자아냈는데 되도록 좋게 봐줘야 할 일이 아닐까...”하고 여길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자르고 싶다. 빗나간 이야기를 듣느니 아무 이야기도 듣지 않는 게 더 나을 경우가 있다.
빗나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쉬운 영화평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프레시안’(8. 10)에 실린 정치학자 이광일의 비평. 그는 이 영화가 전해주는 ‘나름의 의미’를 두 가지로 꼽는데, 첫째는 힘없고 평범한 민중들이 ‘항쟁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을 그려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항쟁으로) 죽은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영화 종결부에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는 환상적인 장면이 뒤따르는데 거기서 죽은 사람들은 밝게 웃으며 춤추는 반면, 살아남은 간호사 신애는 어두운 표정에 사로잡혀 있다.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부담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시적인 영상이 화면을 감싼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 영화가 광주항쟁을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로 완성해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저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살아남은 자의 미안한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쉬이 말라 버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결함은 ‘항쟁의 주체’를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영화감독은 처음에는 ‘윤상원 열사’를 주인공으로 세우려고 궁리하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그를 빼버렸다. 아마도 ‘대중적인 이야기’가 못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는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고서 용 그림을 마무리 지은 격이다. ‘힘없는 민중들도 분연히 일어설 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광주항쟁의 전모를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혀 스러진 숱한 민중들의 희생이 항쟁을 일으킨 동력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만행에 반사적으로 맞서는 저항만으로 역사는 완성되지 못한다.
‘도청에서의 마지막 항쟁’을 앞장선 주체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광주항쟁’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구태여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몇 해 전 지율 스님이 ‘천성산’ 개발에 맞서 단식에 들어갔을 때, 건설족들은 지율이 이 단식에 ‘목숨을 걸었음’을 알아차리고서야 ‘공포’를 느꼈다. ‘역사가 우리의 편’임을 확증해내는 길은 역사를 만드는 일에 우리의 육신을 남김없이 바치는 길이다. 날아가 꽂혀서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말이다. ‘무기를 거둬들이자’며 투항을 부르꾀는 사람들에 결연히 맞서 항쟁을 계속해 나간 이들 지도부가 조명되지 않고서 역사를 온전히 새길 수는 없다.
그런데 영화는 (광주항쟁의 대표적 주도자였던) 윤상원 열사를 줄거리에서 빼버렸을 뿐 아니라, 너무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인물을 대신 들이밀었다. ‘퇴역 공수부대 대령’ 출신의 흥수(간호사 신애의 아버지, 택시기사 민우의 사장님)를 시민군의 지도자로 설정한 것이다. 진압 부대장과 대립시키려는 익숙한 영화문법인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동떨어진 설정일뿐더러 광주항쟁의 의미를 수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버린다. “전두환 신군부 빼고는 (대다수 군인들까지도) 다 정의의 편에 섰다! 양심적 자본가까지도.” 시민지도자의 한 사람인 천주교 신부(송재호 분)가 마지막 도청 사수 때 함께 했다는 것도 사실의 날조다. 시민지도자들은 현실에서 ‘타협’을 주장하다가 뒷전으로 물러나지 않았는가. 영화는 실제의 항쟁 지도부를 줄거리에서 삭제하고 그 대신 택시회사 사장, 신부를 지도부로 왜곡함으로써 기실은 ‘민중이 주체되어 항쟁했다’는 사실까지도 은연중에 묽혀버렸다. 이 대목에서 이 영화가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을 광주항쟁의 적자(嫡子)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의 민중항쟁 지도부는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간첩’이 항쟁 대열을 이끌었다는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반공독재의 서슬이 시퍼랬던 그 시절, 광주 민중들은 자신들의 저항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구하기 위해 ‘태극기’를 내걸었으리라. 태극기라는 상징의 외연은 정확히 자유민주주의를 애호하는 소시민 집단 전체와 일치한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가 고스란히 태극기라는 상징에 갇혀 버릴 수는 없으며,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늘날 우리는 항쟁 기간의 광주를 ‘파리콤뮌’에 비견될 아름다운 대동세상으로, 미래사회의 싹을 선취한 것으로 예찬하지 않는가.
감독의 작위적 설정에 담긴 수상한 의도를 간파하기란 어렵지 않다. 자유주의 개혁보수 세력이 이 영화의 제작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리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추정할 만하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친노세력 실세의 동생이다. 제작비가 백억 원을 웃돌았다는데 아마도 관계 요로의 지원이 있었으리라. 집권여당에서는 이 영화를 관람하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중이라고 한다. ‘광주항쟁 기억하여, 개혁보수 세력 밀어달라’는 말이겠다.
이렇듯 비틀어진 영화 속 정치지형을 감안할 때, 앞서 예로 든 영화평 속의 소박한 민중 예찬론은 차라리 공허해 보인다. 이지훈 감독은 ‘왜 윤상원을 줄거리에서 뺐느냐’는 질문에 엉뚱한 논리로 둘러댔다. “윤상원 열사는 민주항쟁의 대표성을 띤 인물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다듬다 보니 사람 냄새가 안나요. 지식인이 주인공이라서 그렇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5·18은 소시민이 중심이 된 항쟁입니다. 제 영화에 ‘지식인’이 없다고 하지만, ‘지성인’은 있습니다. 아무리 못배운 사람이라 해도 진실을 실천하면 지성인입니다.(경향 인터뷰)”
그의 말에 따르면 윤상원은 광주항쟁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지식인일 뿐이고, 5. 18은 소시민이 주도한 항쟁이라고 한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소시민’은 어떠한 비판적 사회운동 세력의 한계도 넘어서는 자못 신비로운 개념으로 격상된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도 선의로 해석하면 치열한 투쟁의 결단을 형상화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광일의 소박한 민중 예찬론은 감독의 이같이 당당한(?) 소시민 예찬론을 변변히 추궁하지 못한다.
광주항쟁은 콤뮌(민중자치)의 가능성을 넉넉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실패한 항쟁이건, 성공한 항쟁이건 무릇 모든 변혁의 과제는 단순히 자연발생적인 민중저항만으로 이뤄낼 수 없다. ‘도청 사수’를 주도한 항쟁 지도부가 없었더라면 광주항쟁은 한낱 반란이나 사태로 취급돼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처박혔을 것이다. 아시는가? 어떤 투쟁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데 기여하려면 전율할만한 도약이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항쟁에 떨쳐나선 광주 민중들은 어떻게든 ‘우리는 반도(叛徒)가 아니다’, ‘우리야말로 옳았다’는 사회적 인정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그런데 ‘역사(후손)는 우리편’이 되게 하는 길도 스스로 죽어야 뚫어낼 수 있었다.
광주항쟁을 ‘항쟁이게 하는’ 핵심이 들어있지 않은 어떤 광주 영화도 역사의 교재로 쓰일 게 못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떠한가. ‘죽도 밥도 아닌’ 이야기로 시부저기 끝나 버렸으니 이 영화를 불편해 할 작자들이라고는 한 웅큼도 안 되는 전두환과 전사모(?) 밖에 없다. 광주민중항쟁의 원죄를 잉태한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이 영화를 관람한 뒤에, “가슴이 아팠다. 광주의 아픔을 내가 풀겠다.”고 세치 혀를 놀렸다 하니, 이 사회에서 ‘광주항쟁’의 의미가 어느 정도로 공유되고 있는지 새삼 알겠다.
이 영화가 선보이기 얼마 전에 광주항쟁의 고집스런(?) 계승자 윤한봉 선생이 광주 어느 병원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정부는 뒤늦게 선생의 영전에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그 훈장은 ‘광주항쟁의 투사로 기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선생의 영결식장 앞자리를 메웠던 자유주의 개혁분파의 지도자들은 사실 윤한봉의 이름을 광주항쟁과 더불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윤한봉 선생에게 건네준 (‘광주항쟁 유공자’가 아니라 막연히 ‘민주화 유공자’라는) 증명서는 실상 그들이 그를 ‘배제하고 싶다’는 속내의 표현이었다.
열사 윤상원도, 투사 윤한봉도 까맣게 잊혀져 가는 허허로운 21세기의 벽두에 ‘화려한 휴가’가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지금도 꼬리를 물고 있어도 ‘죽어서 살았던’ 마지막 도청의 투쟁, 그 핏빛 선연한 항쟁의 정신은 27년 세월의 벽을 넘어 대중들의 가슴 속에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핵심 주체들을 내쫓고 펼치는 광주 영화는 거짓 영화다. 후세에게 우리의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변변하고 칠칠한 광주항쟁 영화가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200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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