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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융위기 10문 10답
번호 121 분류   조회/추천 11010  /  996
글쓴이 노동전선    
작성일 2008년 11월 27일 19시 36분 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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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10문 10답

 

사회진보연대

 

1. 미국의 부동산 거품은 어떻게 형성되고 폭발했나요?

 

‘신경제’로 칭송되던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이 2000년 말 IT거품의 폭발로 끝났습니다.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경기침체가 가시화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대대적으로 인하했습니다.

과거 케인즈주의 시대의 경기부양책이 정부의 직접지출(적자재정)이라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중앙은행의 이자율조정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이자율(금리)이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게 되고, 따라서 소비가 진작되고 주식시장이 부양된다는 논리입니다. 2000년부터 금리를 급속히 내리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01년 말에 9ㆍ11테러로 경기침체가 우려되자 금리를 1% 수준으로까지 인하해서 사실상 제로금리로 만들었습니다.(2000년 5월 6.5%에서 2001년 12월 1.75%, 2003년 6월 1.0%)

미국은 1990년대 말부터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었는데, 낮은 금리로 인해 형성된 유동성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부의 불평등한 배분으로 미국에서 하위계층의 가계소득이 늘지 않았는데, 신용창출을 통해 가계부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편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양한 대부서비스 상품개발, 신용카드, 신용을 통한 주택의 구입 등 부채를 통해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발전합니다.

이자율이 매우 낮아지자 미국인들은 금융기관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나섰고, 부동산 가격이 급속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1년 이후에는 신용등급이 좋은 프라임 고객 뿐 아니라, 등급이 낮은 알트-A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불량한 신용기록이나 낮은 신용등급, 높은 부채부담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된 주택담보대출을 가리키죠.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2001년 이후 발행액이 급속히 증가해 2001년에 1,900억 달러로 전체 모기지 발행액의 8.6%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에는 6,000억 달러에 이르러 전체 모기지 발행액의20.1%에 달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발행이 급증한 것은 주택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신용평가기법의 발달, 모기지의 증권화 때문입니다. 1995년 미국 국책 모기지 업체인 프레니맥과 패니메이는 신용등급을 평가받은 모기지를 구입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도 신용평가 기법이 도입되고 발달했습니다. 그 결과 원하는 모두에게 신용평가를 토대로 적정한 가격을 붙여 자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시 이를 ‘신용의 민주화’로 평가했죠.

‘민주화’를 달성할 재원은 증권화를 통해 세계적 금융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금을 처리하고 모기지 대출시장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이전에는 대출상담조차 거부했던 모기지 브로커나 대출기관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앞 다투어 대출을 해주겠다고 판촉을 했습니다. 저소득층의 모기지 대출이 늘어났고, 2000년 이후 주택가격의 상승이 이를 더 부추겼습니다. 결국 미국의 주택가격은 2000년 이후 80%가량 상승했고, 미국의 가정은 8조 달러 정도 장부상의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초반의 경기침체가 끝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서, 2004년 4월 1.0%에서 2006년 6월 5.64%까지 금리가 상승했습니다. 금리가 오르자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크게 상승했는데, 특히 여유 자금이 부족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의 원금과 이자 연체가 늘어난 것이죠. 또한 금리가 올라가면서 주택에 대한 투자의 매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해서 주택 가격이 2006년 하반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모기지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주택에 대한 차압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심화되었습니다. 마침내 부동산 거품이 폭발한 것입니다.

 

 

2. 부동산 거품이 어떻게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를 낳았나요?

 

금융시장 중심의 주택정책을 펼친 미국에서 1980년대에 2차 시장을 활용한 주택금융시장이 탄생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 주택금융을 주도했던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하면서, 주택시장에 필요한 자금을 저축(1차 시장)이 아니라 자본시장(2차 시장)에서 도입하는 증권화 방식이 고안된 것입니다. 한편 1980년대 말에 은행 건전성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은행의 자기자본규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위험자산에 따른 은행 부도를 막기 위해서 자기자본을 일정 비율 충당하라는 요구였는데, 이를 위해 대출자산을 매각하는 행위가 증권화를 촉진시켰습니다.

증권화는 이전에 유통되지 못했던 부채자산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변경시켜 자본시장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은행이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은행의 자산계정에는 대출이라는 부채자산이 나타나게 되며, 이 대출자산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이전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묶여 있는 비유동적 자산입니다. 그러나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이 권리(즉, 대출자산)를 누군가에게 판매하면 대출 회수 이전에 은행은 대출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하고 보유했던 비유동적 대출(부채자산)을 증권시장에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행위를 증권화라고 합니다.

증권화 과정에서 금융자본은 은행 등이 매각한 주택담보대출을 유사한 종류의 다른 대출과 함께 재구성하고, 이를 담보로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일종의 구조화된 채권을 발행합니다. 증권화는 은행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이 이제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보다는 부채를 가공해 만들어낸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주요한 수입수단으로 삼게 됩니다.

 

증권화로 투자은행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습니다. 이 증권화 과정은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확대되고 증폭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위기 확산의 주범이 2차 증권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행된 CDO의 부실입니다.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대출,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학자금대출 등을 담로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 CDO입니다. 또 투자은행은 이 CDO를 다른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섞어 3차 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증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수익 추구는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합니다. 따라서 CDO를 발행, 인수,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CDO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하여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것이 신용파산스왑(CDS)계약입니다. MBS, CDO의 부실이 확산되면서 CDS의 부실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통해 엮인 금융전반의 부실로 확산되었습니다. 투자은행, 상업은행, 보험회사 등이 고수익을 노리고 위험한 자산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이것이 이러한 기관들의 부실로 나타났습니다. 9월에 파산하거나 인수된 리만브라더스, 메릴린치, 또 부분 국유화된 AIG 등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3. 현재의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과 무엇이 다른가요? 뉴딜과 같은 방법으로 위기 극복이 가능한가요?

 

현재의 금융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긴급경제안정화법(구제금융)이 뉴딜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기되는 조치들이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방책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조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와 1930-33년 은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루즈벨트가 제시한 뉴딜의 핵심은 ‘금리생활자의 안락사’입니다. 즉, 경제 불안을 낳은 금융자본의 활동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루즈벨트 정부는 중앙은행(연준)을 재무부가 통제하도록 하고, 기관투자자와 투자신탁기금과 같은 고도금융을 규제하기 위해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을 통해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로 뉴딜을 통해 확립된 화폐ㆍ금융제도가 붕괴되고, 금융자본의 활동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에 따라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한 과거의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이 폐지된 것은 그 최종적인 수순이었습니다. 최근 메릴리치,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의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상업은행에 의한 인수ㆍ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는 은행의 겸업화ㆍ대형화를 촉진하는 조치입니다. 또 노동자계급에 대해 완전고용과 고임금을 약속했던 ‘뉴딜 연합’ 역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해체된 상태입니다.

한편 뉴딜의 신화는 2차 세계전쟁(1939-45년)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933년 뉴딜정책의 도입 이후 미국 경제는 4년여 동안 회복세로 접어들었지만, 1937년에 또다시 경기침체에 봉착했고(당시 실업률은 14.3%), 1929년 수준의 국민소득은 1940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회복되었습니다. 실례로 1943년의 경우 설비 투자의 65%, 총투자의 61%가 정부 재정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종전 후 경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여 민간투자가 매우 저조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케인즈주의의 ‘투자의 사회화’는 2차 대전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실현되었고, 이를 통해 전후 미국의 고도성장의 토대가 완성된 셈입니다. 따라서 이를 ‘군사적 케인즈주의’라고 하죠.

 

무엇보다 1930년대 대공황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대공황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예외적 사건’이었습니다. 반면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잠시 반등했던 이윤율이 다시 침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인 고통 끝에 자본주의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예전의 경제위기와 달리 더 큰 위기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4. 1930년대 대공황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는 국제정치와 전쟁 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연결시키는 사건은 바로 파시즘의 집권이었습니다. 즉 대공황이 파시즘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물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현합니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식민지와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팽창주의 경쟁은 전쟁을 향한 필연적 경향을 낳았고, 이것이 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합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참호전과 독가스 속에서 연합군측 500만 명, 패전국측 400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참혹한 전쟁의 여파로, 유럽에서는 반동적 정치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운동과 혁명운동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자극하며 파시즘이 등장하게 됩니다. 파시즘은 기존 정치세력이나 정치제도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지닌 이들을 열광시켰고,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던 짜깁기식 경제정책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에서 파시즘은 자본가, 군부, 귀족 등이 후원자가 되고, 제대한 군인과 도시와 농촌의 중간계급이 대중적으로 파시스트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극적으로 확산됩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대폭락에서 촉발된 대불황의 영향은 즉시 유럽 경제에 파급되어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생존전략으로써 지역 블록화가 모색됩니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경제위기와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1932년 오타와에서 열린 대영제국 경제회의에서 영국과 그 속령 간에 특혜관세가 설치되면서, 몇 개의 국가를 하나의 블록으로 통합해 타 지역에 봉쇄적인 무역정책을 취하는 블록 경제가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금본위제의 붕괴는 세계 여러 나라를 통화권별로 분열시켜 파운드 블록, 달러 블록, 마르크 블록, 프랑 블록 등이 형성됩니다. 이들은 각각 열강을 중심으로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차별관세, 구상무역, 수입통제, 외환관리 정책으로 역내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블록 내에서는 국가 간 요소이동을 자유화함으로써 지배국의 자본 수출이나 기업 진출을 촉진시키는 반면, 식민지나 속령의 공업발전을 억제함으로써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 지배·예속 관계를 고정시켰습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식민지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에서 파시즘의 강화, 전쟁을 향한 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경제위기가 국제정치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세계경제 내에서 불평등한 국가 간 위계관계가 불안정해지거나 악화됨으로써 국제정치의 갈등이 고조되는 경향을 낳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경제위기로 인해 각국 내에서 대량실업이나 빈곤이 만연하게 되면서 사회갈등이 격화될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정세에서도 나타났듯이 사회갈등의 격화는 노동자운동을 주도로 하는 사회혁명으로 발전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운동이 패퇴할 경우에는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증오를 선동하는 새로운 반동적 정치세력, 즉 파시즘이 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후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새로운 국제 정치 경제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불리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가 확립됨으로써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경제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기업활동의 초민족적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초민족기업이 형성되고,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상호관계가 밀접해졌습니다. 또한 미국은 냉전의 전시장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 대해 역개방 정책을 취함으로써 일본을 정점으로 동아시아 경제를 미국에 포섭시켰습니다. 금-달러 태환, 고정환율제를 근간으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1970년대에 실질적으로 붕괴한 이후에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중심부 국가들간의 경제적 상호 관계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들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이동이나 무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도 매우 높습니다. 현재 시점에도 금융위기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책공조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 유럽,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의 가능성은 당장 그리 높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나머지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제적으로 유지하려는 욕구는 더욱 높아질 수 있고, 이것이 중동, 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이 극적으로 증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계경제에서 소외된 지역에서 발발하는 상호파괴적 전쟁,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인종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례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경제위기의 심화는 이제와는 매우 다른 양상의 위험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보수주의, 인민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2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경제의 블록화와 상호 파괴적 대립을 선동하는 반동적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보수적 반동적 반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화의 전망이 시급하며, 이를 추동할 수 있는 대안적 노동자운동이 형성이 관건입니다.

 

 

5.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요?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① 한국경제가 미국경제 및 세계경제와 맺고 있는 연관, ② 미국발 금융위기의 강도, ③ 현재의 한국경제 상태.

한국경제는 무역과 금융투자(및 투기)를 통해서 미국경제 및 세계경제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1997~98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무역의존도(=(수출+수입)/국내총생산)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내수는 축소되고 수출증대를 통해 외환도 확보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 및 아세안으로의 수출 규모나 비중은 매우 높아졌고 미국으로의 수출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의 수출 감소는 이전만큼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위기가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일 뿐만 아니라 최근 수출비중이 매우 커진 중국으로의 수출도 줄인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으로의 수출증대는 중국의 대미 수출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으로의 수출만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미국경제가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내면서 세계각국 상품의 일종의 ‘최종소비자’ 역할을 해 왔는데 이제 이런 역할이 불가능해지면서 한국경제는 직접적으로는 미국으로의 수출이,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의 수출이 줄어들어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한국경제가 금융적 측면에서 미국과 맺고 있는 관계는 무역관계보다 더욱 밀접합니다. 1997~98년 경제위기 이후 총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규모는 급증하였습니다. 이런 급증은 직접투자와 주식투자의 직접적인 유입에서도 기인하였지만 주로는 한국에서의 막대한 이윤에 기초한 가치상승에서 연유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미국계 자본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이런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 환율변동, 그리고 신용경색을 야기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고 이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강도가 문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된 은행국유화와 예금 전액보장, 은행간 거래 지급보증 등의 조치와 추가적인 경기부양조치 고려 등으로 인해 신용경색이 미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용경색 현상은 심각하며 신용경색은 몇몇 개도국들의 외환위기로 인해 국제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20% 정도 하락한 주택가격은 앞으로도 10% 이상 추가로 하락할 것이며, 이제 본격화하고 있는 다른 부문의 침체가 가세한다면 금융부문의 위기 및 신용경색은 이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시기도 2009년을 넘어 2010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번지고 있는 개도국의 외환위기로 인한 국제적인 신용경색은 세계적인 대불황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감내해야 할 한국경제 상태는 어떤가요? 한국경제는 1997~98년 위기를 극복하였다고는 하나 그동안 성장률은 지지부진하였으며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선 상태입니다. 그리고 건설부문의 침체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결국 금융위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환율인상, 물가인상, 신용경색, 주식시장 하락, 금리인상 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성장둔화와 수입물가 상승은 필연적이며, 금리인상으로 인한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원리금상환 부담, 아파트가격 하락, 건설사 부도 및 금융기관 부실)도 예견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고용불안과 임금저하가 뒤따를 것입니다.

한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본다면 아이슬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의 와환위기에 이어, 발트 3국, 인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러시아 등도 환율위기나 금융위기를 겪는다면, 그래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이 심각해진다면 한국도 더 심각한 환율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에 주식투자와 직접투자까지 포함한 순국제투자(=대외투자-외국인투자) 잔액의 마이너스 규모가 매우 커진 상황이어서 한국경제는 환율인상에 매우 취약해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국내 금융기관들의 위기와 은행들의 외화채무 지급보증을 해준 정부의 재정적 위기 또한 심각해질 것이고, 이는 또 다른 환율위기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한국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왜 이렇게 불안한가요?

 

한국의 주식시장은 2007년 최고치에 비해 50% 이상 하락했습니다. 환율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비춰보면 50%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그만큼 원화가치가 하락한 것입니다. 주식시장은 70% 이상 하락한 아이슬란드, 러시아, 아일랜드, 페루, 베트남, 그리고 60% 이상 하락한 중국, 폴란드, 홍콩 등에 비해 덜 하락하였지만, 원화가치는 거의 최고 수준으로 하락하였습니다. 따라서 달러기준 국내 주가하락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렇게 국내 주식가격과 원화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은 한국경제에 많이 들어와 있던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탈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은 1997~98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에 주식투자, 직접투자 형태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주식시장 상승으로 인해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기도 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7년 사이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증권선물거래소 상장 주식에서 얻는 자본이득 액수가 약 265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외채권과 대외채무를 비교한 순대외채권은 1997년 4/4분기에 -681억 달러였다가 2006년 1/4분기에 약1,211억 달러까지 상승하였지만(사실 이 수치도 2007년 말 약 348억으로 줄어들었고 2008년 10월 현재는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것입니다), 직접투자와 주식투자까지 감안한 순국제투자잔액은 97~98년 위기 때에 비해 그 마이너스 정도가 매우 커져 2007년 말 약 2,353억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표 1> 참조).

 

<표 1> 순국제투자와 순대외채권(단위: 억달러, %)

 

이렇게 그 규모가 커진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주식시장 하락 및 원화가치 하락이 예상이 되자 자금회수를 하고 있는 것이고, 국제적 신용경색 및 한국경제 불안으로 그 이탈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경제의 금융경색을 심화시키고 있고 개도국들의 외환위기나 외채위기가 심해진다면 한국경제를 또 다시 환율위기로 인한 심각한 경제위기로 몰아갈 것입니다.

IMF 위기 이후 거의 모든 지배세력과 주류언론이 소리 높여 주장했던 외자유치는 이렇게 한국경제를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렸고 이제 그 후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위원화와 300억 달러 규모의 달러-원화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한 것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통화스와프를 통해 실제로 달러를 들여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도래한다면 내년 4월까지 이를 다시 되돌려주기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한국이 97년 위기에서와 달리 외환핍박에서 쉽게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미국 등 비아시아 지역 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여 무역수지 흑자가 대규모로 발생하여 외환위기를 빨리 벗어난 데 반하여,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와 체결한 통화스와프는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에서 배제된 다른 개도국들의 환율위기를 심화시킬 것이고 이런 국제적인 신용경색 및 환율위기는 한국 등에도 다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실해지거나 쓰러지는 금융기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계속해서 요동을 칠 것입니다.

 

 

7. 중국과 동아시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각국에서 주가는 하락하고 성장은 둔화되고 있으며 실업률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간 차별적입니다. 세계 대부분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일본과 중국은 그 영향을 덜 받고 있습니다. 세계 거의 모든 통화가 달러화에 대비하여 평가절하가 되고 있지만 엔화는 절상이 되고 있고 위안화도 그 가치가 하락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일본 엔화가치가 상승하고 있긴 하지만 일본 주식시장도 폭락하고 있고 성장률도 2/4분기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일본경제가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위험에 처한 미국 금융기관을 일본계 초민족적 자본이 인수하는 등 외형적으로 보면 일본경제는 위험에 처한 미국경제를 대체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런 자본들의 인수합병이 성공으로 판명이 날 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계 초민족적 자본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ㆍ투기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저성장, 자산디플레이션의 덧을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도요타 자동차가 최근 북미사업 부문에서 지난 1980년대 첫 진출 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철옹성 같은 중국경제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입니다. 주가하락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10%를 넘던 성장률이 3/4분기에는 9%로 둔화되었습니다. 수출시장의 축소, 위앤화 평가절상 등으로 수출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되어 성장률 둔화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중국은 자체적으로 부동산 투기거품이 꺼지고 있어 이로 인한 문제도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금융위기 초기에 미국경제가 나빠져도 중국, 인도 등이 세계경제를 이끌 것이기 때문에(‘디커플링’ 효과) 그 위험이 예전보다 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최종소비자’ 역할을 해온 미국경제의 위기는 전세계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어 ‘디커플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국 증권시장의 등락에 정확히 연동되어 움직이는 세계 각국의 주가를 보면 ‘디커플링’이 얼마나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 또한 그 영향의 정도가 조금 덜할지는 몰라도 미국경제 위기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보입니다.

 

 

8. 금융위기로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가 만들어질까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되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를 형성했던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0년대 중반 해체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를 세계화폐로 인정하면서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교환해줄 것을 약속합니다. 따라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를 믿고 달러를 세계화폐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후 자본주의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서 마셜플랜으로 많은 재정지출을 하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의 전쟁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또 산업자본의 해외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져 유럽 등 국외로 진출한 기업이 미국으로 다시 역수출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미국정부는 달러를 금 보유분보다 더 발행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달러가 과잉발행되고 금의 가치가 높아지자 유럽 정부들은 미국에 대해 금태환을 요구했습니다. 금태환을 전제한 고정환율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미국 대통령 닉슨이 1971년 금태환 중지를 선언합니다. 이어서 고정환율제도도 폐지되고 달러를 본위화폐로 하는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됩니다. 한편 이 당시 영국에서는 유로달러 시장이 형성되어 금융시장이 활성화됩니다.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막아 손발이 묶인 사이에 영국 금융자본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허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국제적인 금융자본이 유로달러 시장으로 몰리게 되자 위기를 느낀 각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게 됩니다. 1973년 1차 석유위기로 생성된 오일달러가 여기에 기름을 붙게 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금융자본의 이동성이 증대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산업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금융적인 축적방식에 몰두하게 됩니다. 전후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미국에서 개발된 다양한 소비자신용(나중에 신용카드로 발전)이 산업자본의 금융화에 디딤돌이 됩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산업자본으로 알고 있는 제너럴일레트릭(GE)의 경우 2003년 총이윤 중에서 42%가 GE캐피털에 의한 것이 고, 제너럴모터스(GM)는 총이윤의 80%를 GM인수회사에서 얻습니다. 즉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후 1970년대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전후 자본주의 질서를 뒤바꿔 놓습니다.

억압되었던 금융이 해방되어 세계각지의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고,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고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되고, 복지제도와 사회 전반을 시장논리와 이윤에 따라 재편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자본주의가 도래할까요? 이를 판가름 하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안들을 검토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주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금융거래에 따르는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할 방안입니다. 대표적으로 ‘거래상대방 위험 관리를 위한 정책그룹’(CRMPG)이 재무부에 제출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정책그룹의 의장은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골드만삭스 회장인 제랄드 코리건이고, 주요 멤버들은 세계 12개 은행, 투자은행의 임원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정책은 다른 금융기업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이겠지요.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 금융거래를 표준화하고 공개한다. ② 금융거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③ 금융기관 내 의사결정을 분리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은 사후 평가를 필수화한다. ④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동성 지급준비금을 적립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은 금융자본 투기를 규제(또는 금지)하다기 보다는, 투기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긴급경제안정화법)도 결국 국내적으로는 계급적인 수탈을,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수탈을 통해서 미국 금융자본을 회생시키겠다는 안입니다. 7,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우선 미국 노동자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주되게는 미 재무부의 채권발행을 통해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로 충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지위 때문에 유지되는 이러한 달러환류가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그래도 믿을 것은 미국경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0월 13일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를 위해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많은 나라 정상들이 동의해 11월 15일 주요ㆍ신흥 20개국(G20)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립니다. 하지만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을 낙관할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유럽, 일본, 중국 등이 각각 유로화, 엔화, 위안화의 세계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세계화폐로서의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경제의 지배적인 지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관리할 대안적 세력이 없습니다. 이미 1970년대 중동의 오일머니가 투자처를 분산시키면서 엔과 마르크가 국제적 통화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과 독일은 그러한 지위를 유지할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러한 역할을 마다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수립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축이 벌어진다고 해도 2차 대전이후 전후 자본주의를 재구조화 했던 사건에 비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세계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축적전략이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없는 새로운 자본주의 국제경제 질서를 상상하기 어렵지요.

 

 

9. 한미 FTA 비준과 자통법이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까요?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의 신속한 비준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비준되면 무역과 외국인투자가 활성화되어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침체가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미 FTA를 현재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한미 FTA를 비준하는 것이 현재의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한미 FTA 비준은 오히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더 높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한국경제의 내부적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중국 등 신흥시장의 부상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한 까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ㆍ자유투자를 통해 한국경제의 또 다른 구조조정을 시도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의 핵심 조항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정치ㆍ경제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통합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의 핵심에는 서비스 시장 개방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법률, 회계, 세무, 정보통신, 금융서비스 등이 포함되는 사업서비스가 중요합니다. 사업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업체를 지원해주는 서비스업입니다. 사업서비스는 초민족기업이 밀집해 있는 금융화된 도시에서 발달한 것인데, 한미 FTA를 통해 이를 한국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한편 한미 FTA로 이미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개방되었던 금융시장의 개방폭도 더 확대될 것입니다.

한미 FTA와 동시에 금융자본에 대한 각종 규제를 없애는 조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이 그것입니다. 한국에는 2,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 국민연금, 기업연금 등 새로운 금융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운용업을 육성해 이러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금융자본도 키우겠다는 것이지요. 노무현 정부가 이미 이러한 계획을 동아시아 금융허브 육성으로 발표했고, 그 핵심에 자통법이 있습니다. 자통법은 지금까지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 간 장벽을 허물어 증권사의 덩치와 자산운용능력을 배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또 정부는 소규모 결재 등 은행의 업무까지 증권사에게 허용해서 한국 5대 증권사, 즉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을 대형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미 1997~98년 위기 이후에 한국은행 독립, 외국인 주식취득 한도 확대,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자회사 설립허용, 채권시장 개방,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 등 을 통해 자본시장을 대부분 개방했습니다. 이러한 전면적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한국경제는 세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가 되어,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키가 부서진 난파선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미 FTA가 비준되고 자통법이 시행된다면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이 더 진행되고, 금융투기가 확산되어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강화될 것입니다.

 

 

10.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요?

 

위기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는 7,0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 외에도 현행 금융 규제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금융기업들도 스스로 위험관리의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개혁 논의는 금융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진단보다 표피적인 수준의 위험관리 방식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금융제도의 부분적인 위험관리는 사실상 금융화의 중단이 아니라 지속 또는 심화를 의미합니다. 위험관리를 통해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금융화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반면 세계 사회운동은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전혀 다른 접근법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 아탁)은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2008.10.15)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아탁은 주류에서 언급하는 금융개혁 수단들이 금융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부자들을 보호하며, 단지 금융투명성과 같은 표피적 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의 중심축 특히 자본의 세계적 이동성을 중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참고하여 금융을 억압하기 위해서 국제적으로 필요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① IMF, 세계은행, WTO를 해체하고 새로운 무역ㆍ금융체계를 구축해서 ‘시장의 자기규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② 금융시장의 실물경제 지배를 해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통화거래를 포함해 모든 금융이동에 대한 과세, 각국의 모든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 금융복합기업의 창출 금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정당한 분배 정책, 에너지ㆍ철도와 같은 인프라에 대한 사유화 중단과 연금 사유화 중단 등이 포함됩니다. ③ 투기적 금융상품을 전면 금지하고, 공공은행을 강화하고, 신용등급기관을 공적으로 통제하고, 모든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금지하고, 파생금융상품의 장외시장거래를 금지하고, 역외금융센터(非거주자간의 거래를 위해 조세, 외환 관리 등에서 각종 우대 조치와 그 영업 거점을 제공하는 지역)와 조세회피국을 없애는 등 금융시스템 전반을 운영원리를 바꿔야 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IMF 이후 10년 동안 전면적인 금융시장 개방이 단행되었습니다. IMF 이후 추진된 전면적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한국경제는 세계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30% 이상을 외국자본이 잠식하고 있으며, 적대적 인수합병, 구조조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IMF 이후의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전면 재검토하고, 금융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편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통합법, 금융산업분리 완화, 한미FTA 비준도 중단되어야 합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자본은 위기 부담을 전 사회에 떠넘길 것이며, 특히 노동자에게 해고와 임금삭감 형태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번 위기의 부담이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 간 갈등을 부추기며 비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정규직에게 공격의 칼날이 겨눠질 것입니다. 상여금 삭감, 통상임금 동결을 통해 임금총액이 삭감될 것입니다.

물가인상을 감안하면 실질임금 삭감이 상당할 것입니다. 또한 대 사업장 정규직을 공격하기 위해 해고의 완전 자유화를 위한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을 지키는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면, 현재의 경제위기 수준은 그러한 것조차 불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며 노동조합은 비상한 각오로 기존 활동방식을 대폭 바꾸어야만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단결하여 임금과 고용을 지키고,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시키기 위한 연대투쟁을 전국적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또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경제위기를 발생시켰음을 폭로하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공기업 사유화, 각종 사회보장 제도의 후퇴 등을 막기 위한 투쟁도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IMF 이후 취해진 각종 자유화 조치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것이나 국제적으로 전면적인 금융억압을 실행하자는 제안은 정세적인 문제제기입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금융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폭로하고, 사태의 원인이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나 파국적 위기를 낳는 금융메커니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과 번영을 구가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그 뿌리에서부터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특히 2007-8년 금융위기 아래 이윤율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1974-75년 이윤율 수준을 하회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이윤율 저하에 따라 금융화를 단행했던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시적 해결책마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자본주의의 헤게모니성립기, 이윤율의 성장기에 가능했던 케인즈주의적 대안이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의 위기를 뜻합니다. 우리는 금융억압과 노동자권리에 대한 요구를 매개로 투쟁을 전진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 노동자통제, 대안세계화와 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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