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성명] 132호 6-1 우리는 국민고객센터 지부 투쟁을 열렬히 지지ㆍ성원한다

각자도생의 ‘공정성’을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평등과 연대로 나아가자

건강보험공단 국민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6월 10일부터 점거농성과 함께 2차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파업을 전개하다가 복귀하고 나서 그 힘든 재파업을 전개하는데도 열화와 같은 투쟁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고 공단에 대한 분노가 깊을 데로 깊어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생활임금 쟁취, 근로기준법 준수,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고객센터 직영화 쟁취”를 내걸고 힘차게 투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열렬하게 지지하고 성원한다.

이 투쟁의 단사적, 사회적 의미는 크고 중대하다.

이 투쟁은 문재인 정권이 내걸었다가 헌신짝처럼 내던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다시 전면에 부각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는 투쟁이다.

그러하기에 이 투쟁은 공공부문 민간위탁 철회 및 비정규직 철폐를 통해, 코로나 19시기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는 민간부문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는 진짜 마중물이 되는 투쟁이다.

이 투쟁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 비인간적 대우, 열악한 노동조건을 없애고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개선하는 투쟁이다.

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으로서 공공성을 지닌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전화업무 외주화를 통해 사회공공성의 원칙을 스스로 배반했다. 이 투쟁은 공단이 내던진 사회공공성 원리를 되찾는 투쟁이다.

이러한 막중한 단사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 투쟁에 대해 문재인 정권은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있다. 여성인권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차벽으로 건보공단을 전면 봉쇄하고 공단 건물 내에서 투쟁 중인 여성노동자들에게 식사제공마져 가로막으며 인권을 짓밟았다.

우리들의 연대는 ‘공정성’보다 아름답다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조 내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여성단체를 포함해 사회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조 내부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청년층들 일각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이유로 직고용 투쟁이 무임승차 투쟁이라며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굳건하게 단결해야 할 노동자들 내부의 일부 분열적 움직임은 순전히 공단이 조장한 문제다. 2006년 외주화가 실시되지 않았으면 고객센터 전화상담 노동자들과 건강보험노조 노동자들은 하나의 통합노조, 하나의 노동자들로서 굳건하게 단결했을 것이다. 진짜 사장인 공단(이사장 김용익)은 건강보험노조의 탓을 대며 직접교섭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분열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내 청년층 일각의 ‘공정한 경쟁’을 들어 비정규직 투쟁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인천공항, 지하철, 철도 등 상당수 사업장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공정한’ ‘경쟁’ 자체가 사실은 서로 모순적이며 심각한 불공정을 내포하고 있는 자본 세계의 논리다. 자본의 세계는 바로 무한경쟁의 원리에 기초한 정글 같은 야만 사회다. 이 야만 사회는 각자도생의 사회다.

각자도생의 사회는 “분열시켜 통치하라”라는 말이 있듯, 피지배계급 내부의, 약자 내부의 피말리는 경쟁을 통해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회다. 이 경쟁의 공정성은 절차적, 외형적으로 아무리 공정하다 해도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의 계급적 차이, 재산상의 차이, 교육환경의 차이, 기회의 차이, 건강의 차이 등으로 인해 그 출발부터 그 끝까지 공정하지 않다.

무한경쟁은 바로 착취강화의 논리이기도 한데, 성과급제, 팀제 등의 경쟁은 노동자 내부를 갈가리 분열시켜 놓는다. 이 ‘공정한 경쟁’ 논리는 심지어 같은 노조 내부에서도 청년층과 장년층을 갈라놓아 자본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게 하고 평생 노동해온 장년노동자들을 주변부 노동자로 소외시킨다. 그런데 오늘날 장년층은 필연적으로 청년의 미래의 모습이다.

이 ‘공정한 경쟁’ 사회에 대한 희구는 그 순수한 열망과 달리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을 가로막고 사회 공동체의 화합과 연대라는 인간적 가치 대신 비정하고 냉혈한 가치가 사회에 만연하게 만든다.

나의 공정이 다른 이들의 불공정의 잣대가 될 수 있다. 나의 공정이 성실하게 일한 다른 노동자들의 삶의 행복을 파괴할 수 있다. 나의 공정이 다른 이들의 파업의 권리를 제약해 종국에는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용역업체가 경쟁을 시켜 능률을 올린다는데 그 경쟁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화장실을 안가느냐 이다. 하루종일 점심시간에 화장실 한번 갔다 오고, 얘기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공단은 노동착취를 경쟁이라는 글자로 둔갑시키고, 상담노동자를 괴롭히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왜 직고용을 외칠 수밖에 없는지 공단 이사장을 들어야만 한다.”(건보고객센터지부 대전지회 이조은 지회장 1차 파업 당시 발언, <노동과 세계>)

청년들이 시험으로 ‘공정한 경쟁’을 내세울 때, “그 경쟁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화장실을 안가느냐 이다”, “노동착취를 경쟁이라는 글자로 둔갑시키”지 말라며 처절하고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 논리 대신에 이 노동자들의 처절한 절규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공정성’ 논리보다 사회불평등을 위해 싸울 때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전진할 수 있다.

우리 노동자들의 연대는 각자도생의 ‘공정성’보다 아름답다.

노동자들은 각자도생의 ‘공정성’의 기치를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평등과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이다.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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