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31호 5-5 469번째 죽음에서 멈추기 위해서는

현대중공업 10년간 산재사망 50명, 그중 38명이 하청노동자

이형진 ㅣ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총무부장

평생 어버이날이 아빠의 기일이 된 7살 아이의 비극

5월 8일 어버이날, 현대중공업의 올해 두 번째 중대재해가 일어나고 말았다. 81년생 하청노동자가 20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 9도크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 3번 COT탱크 안쪽 상부에서 작업 중이던 장세준 노동자가 오전 8시 40분경 추락해 사망했다. 용접 작업 도중 용접와이어 드럼을 가져오기 위해 갑판 위로 올라가다가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재해자는 건조3부 단기공사 업체 가온기업 소속으로 2월부터 고용된 용접작업 일당제 물량팀 노동자였다. 부인과 7살 아들을 두고 토요일인 어버이날 출근했다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 추락, 비의도적 사고로 명시됐고,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469번째 죽음은 또다시 추락사로 기록됐다.

산재사망 76%가 하청노동자, 24%가 재래형 추락사

현대중공업에서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50명이다. 그중 38명인 76%가 하청노동자이고, 또 그중에 12명이 추락으로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에는 1만2천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유해 위험 작업에 내몰려 있다.

재해자는 ‘프로젝트협력사’라고 부르는 소위 단기업체의 물량팀 소속이다. 그동안 노동조합과 정부, 전문기관 등은 조선 사업장의 불법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원청은 2020년부터 건조부를 중심으로 물량팀을 전담하는 단기업체, 즉 ‘프로젝트협력사’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고용구조의 개악을 오히려 공고히 했다. 현재는 건조부와 도장부에 단기업체가 20여개로 늘어나 미숙련 노동과 불안전한 환경에 내몰리는 노동자가 1천여 명에 달할 정도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곳에 어떤 유해 위험요인이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교육 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 또한 자신이 일하는 작업과 장소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안전보건 계획 수립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유해 위험작업이라고 판단할 때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이것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권리이지만, 하청노동자들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공문구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책임회피 살인집단 현대중공업의 명백한 타살

현대중공업의 올해 첫 중대재해는 2월 5일에 발생했다. 대조립1부 직영 소속인 강주대 노동자가 자동용접 작업을 위해 이동 중 2.6톤의 곡블록이 미끄러져 덮치면서 머리가 철판과 정반지그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처참한 산재사망 사고가 있은 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아 재래형 재해가 또 일어난 것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근본대책을 세우겠다고 떠들던 원청은 그렇게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2016년 현대중공업에서 11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죽어나갈 때, 사측은 노동조합과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에서 홀드 악세스해치 일자형 사다리에 등받이 울이 설치되지 않아 추락위험이 높으므로 ‘방호울 또는 플랫폼 난간 상부 보강’ 등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동일한 위험에 노출된 하청노동자는 결국 추락사했다.

이렇듯 故장세준 노동자의 죽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예견된 사고였다. 재해자가 제대로 된 표준작업지시서도 없이 구두로 작업지시를 받았던 상황은, 물량팀 하청노동자들 모두가 너무나도 당연한 듯 평소에 겪는 일상이다. 일일작업계획서에는 작업자들의 서명도 찾을 수가 없어, 만약 사고가 나면 그 전까지 어느 노동자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잘 파악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상태에서 물량팀 하청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밀폐공간인 탱크 내부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법정 기준 충족? 개소리 말고 입 닫아야

사람이 죽어나가도 책임 회피에만 혈안인 현대중공업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측은 회사 소식지를 통해 사고 재발방지에 총력을 다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당시 사고 현장은 안전난간과 조도 등 모든 안전시설물이 법정 기준을 충족”했다면서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했다. 법정 기준 충족? 사기를 쳐도 정도껏 해야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안전난간은 2016년 산보위에서 법정 기준보다 높은 1.5m~2.0m로 연장 설치할 것을 약속했고, 이번 사고현장 통로의 조도는 기준(75럭스 이상)보다 낮은 44~45럭스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소작업 시 필수적인 안전망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밀폐구역임에도 관리감독자는 없었고, 그 넓은 탱크 안에 화기감시자 한 명만 있었을 뿐이다. 물량팀 하청노동자인 고인의 작업에 대한 표준작업 지시서, 안전작업 지시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법정 기준을 충족했다는 말인가!

안전시스템 무너뜨리는 하청 고용구조가 문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 계획을 회사 경영이사회에서 승인받도록 돼있다. 올해 2월, 현대중공업 이사회에서는 2021년 안전보건 계획을 ‘생산주도의 자율안전관리 체계 정착’, ‘현장 중심의 안전관리체계 개편’으로 정했는데 이는 생산 현장이 책임지고 안전관리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 현장에 하청 비율이 70%에 달하고, 구조적으로 하청은 자율안전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중대재해 통계와 원인 분석으로 모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계획을 수립했다. 여전히 현장은 기본적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심각하게 널려있는데,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눈 가리고 아웅만 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유사 작업장에 대해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때까지 유지한다. 또한 40여 명의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공단 전문가들이 특별감독을 진행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작업중지와 특별감독,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작업중지 등의 조치가 있었음에도 중대재해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바로 안전시스템을 무너뜨려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하청 고용구조 때문이다.

조선업은 공사의 규모와 도크장 작업 등에서 건설 현장의 특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작업 상황이 공정에 따라서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으므로 일시적인 점검체계로는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없는 구조다. 특히 저임금 노동, 장시간 노동, 미숙련 노동의 구조적인 문제와 알권리, 참여할 권리, 작업중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하청 고용구조에서는 재해 발생을 멈추기 어렵다.

469번째 죽음에서 멈추고 기필코 470번째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이후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으로 현대중공업 1‧2·3‧8‧9도크 고소작업 일체가 현재까지 멈춘 상태이다. 원·하청 사측은 노동자들의 안전교육을 진행하지만, 여전히 1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량팀 하청노동자들은 교육에서도 배제돼 있다. 재해자가 물량팀 노동자인데 정작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빠져있는 것이다. 중대재해 작업중지로 일도 못하고, 근로기준법대로 휴업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신세가 정말로 비참하다.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에서는 중대성 재해가 반복되고 수많은 산재사고가 은폐된다. 안전의 사각지대인 단기업체를 대책 없이 늘리고, 2~3개월짜리 프로젝트업체 안에 또다시 물량팀이 일하는 다단계 하청구조와 경영진의 생산제일주의는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근본원인이다. 항상 떠들썩한 현대중공업의 안전대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지금, 반드시 원청의 최고 책임자를 구속해야 한다. 안전한 현장엔 관심도 없고 다단계 하청구조로 비용절감, 공기단축에만 혈안인 책임자들을 모두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 무엇도 노동자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469번째 죽음에서 멈추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의 고용구조 개혁과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 근본적인 안전보건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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