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21호 기능대회는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김경엽 ㅣ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아! 슬프도다.

어찌 이리도 매정한 현실이 반복되는가? 기능대회는 정부의 정책과 설명과 다르게 변질 되었다. 노동현장에서 직업적 단련으로 형성된 기능을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다. 산업체에서 외면 받아온 기능대회를 학생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기능반 학생들을 ‘기능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위한 목적으로 선발하여 운영하였다. 교육부는 2007년 고 황준혁, 2020년 고 이준서 학생들의 죽음으로 보여준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메달 경쟁에 의해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죽음의 사슬을 끝내지 못하고 오늘 또 연장시키고 있다. 우리는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8일 늦은 밤, 만 17세, 고 이준서 학생은 ‘나는 메달 따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온몸을 던져 직업계고등학고 ‘기능반’의 어둠을 폭로하였다. 전국의 교육·시민·노동·사회단체들이 고 이준서학생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성명서와 기자회견으로 애도하며, 경쟁적 기능경기대회를 개선하고 이를 준비하는 직업계고등학교의 기능반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2020년 지방기능경기대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성과를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 각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심지어는 경주 S공고 인근의 경주 K 공고에서 비정하리만큼 이번 지방경기대회 입상실적을 선전하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현실이 이렇게 비정함에도 교육부는 너무도 안이하다.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생안전을 방치한 교육부를 규탄하며,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전교조도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함께 하고 있다. 교육부는 ‘고인이 얼마나 더 현실 세계로 소환’해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학생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것인가?

산업화 시대의 기능대회

기능대회는 55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대회이다. 1964년 이후 중화학공업을 육성정책을 추진해나가던 박정희 정부는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결정하였다. 1966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15회에 첫 참관인단을 파견하였다. 1966년 9월 지방기능경기대회, 11월 제1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이어 67년 7월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9명의 선수를 스페인에 파견하였다. 초기에는 국위선양과 한국 상품의 이미지 제고를 통한 수출증대라는 경제적 목적이 강했다. 당시 발족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는 ‘경제발전과 숙련기술인력양성이라는 과제를 짊어진 시대적 요구’라고 지금까지 밝히고 있다. 산업화 초기 단계의 근대성을 겨우 벗어난 우리 사회에서 산업인력을 배출하는 통로로 핵심 기능인 키워 ‘기술한국’을 일부 견인한다.

하지만 기능대회가 기능을 가진 모든 기능공들이 자신의 기술력을 평가받는 자리이기보다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를 선별하는 대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국제기능경기대회에서 성적에 매몰되어 입상자에게 집중 조명하는 정책이 우리 사회 전체 기술력을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선택적 해택을 부여하는 방식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역설적으로 가장 우수한 기능인들이 전공과 무관한 대학진학 하는 등 탈기능공의 길을 걷게 하였다.

출전 선수가 대부분이 고등학교 학생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기능대회 과제가 산업현장에서 쓰임과 응용력이 높여 주는 것이라면 현재 ‘기술한국’ 이끌고 나가는 기업들의 노동자들이 기능대회를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새로운 기술 변화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기업은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나간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대회 과제는 현실과 멀어졌고, 시험을 위한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공정성을 높이려는 시험문제는 더 추상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은 현실적 응용력과 현실적이지 못한 과제 수행을 요구하게 된다. 기업이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음에도 국제대회 메달 획득이라는 성과주의 목표에 매몰되어 관행처럼 기능대회는 유지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대회는 산업 현장 노동자가 대신 고등학교 학생들을 메달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기능대회가 고등학교 기능반을 운영하는데 왜곡 가져오는 핵심 기저이다.

정부가 말하는 기능대회는 숙련노동자의 ‘기술적 기능 능력을 평가’하는 대회라고 평가하지만 결코 평가의 장이 될 수 없었던 역사이다. 노동교육학적 관점에서도 추상적 기술이 인간의 몸에 안착되는 육체지능으로 제대로 형성하는지 평가 하지 못하는 선발과 경쟁 중심의 대회 운영 방식은 비교육적인 활동을 학생에게 강요하게 된다.

기능반은 통상적인 학교 동아리가 아니다.

직업계고등학교에서 왜 소수 학생을 선발하여 기능반이라는 학급이 아닌 소집단을 만드는가? 일상적인 교육활동이 아닌 특별할 만큼 학생의 진로 선택의 넓어지거나, 취업의 문이 열리는 등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학생의 선택과 특별할 것도 없는 학교 선발 과정이 혼합되어 있지만 기능반 활동에 억압적 요소가 발생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등 수없이 많은 질문과 의문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기능반은 학교교육과정의 동아리다. 구체적으로 동아리 형태를 구별짓기를 하면 ‘전공교과 동아리’로 분류된다. 하지만 학교에 운영하는 일반 동아리와 다른 결의 무늬를 갖는다. 기능반 선발은 조기에 한다. 통상 고등학교 1학년에 선발되지만 기능중심으로 학교운영하는 몇몇 학교의 경우 중학교 3학년 입학예정자들을 선발하여 관리하고 있다. 메달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을 조기 선발하여 소수 정예화된 기능반을 운영하고 있다. 17세부터 22세 사이 참여하는 국제기능올림픽 대회는 2년 주기로 열린다. 그래서 매년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수자 2명이 출전권 획득하는 ‘평가전’ 추가로 실시하는 구조이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승자는 세계대회 평가전에 참여권을 획득한다. 결론적으로 세계대회 메달을 목표로 16세(고1)부터 20세까지 4년의 기간이다.

고1부터 고3까지 소집단의 기능반은 학교교육과정에서 동아리활동과 같은 위상을 뛰어넘는다. 기능반은 교육활동의 결과로써 운영되지 않고 교장을 포함한 관리자들의 관심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회 입상 현황과 같은 대외적 선전에는 기능반 성과가 활용되지만 평소에는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매우 패쇄적인 조직이다.

기능반 구성은 직종별 학생으로 같은 전공과 1~3학년들로 구성되다 보니 지도교사와 학생, 학생들 간의 권력구조가 매우 명확하다. 한 예로 대회 출전하는 3학년은 작업준비과정을 1~2학년이 해놓으면 과제수행 작업만 하고 쉰다. 심지어 뒷정리는 저학년의 몫이 된다. 타일 직종의 경우 타일을 붙이기 위한 시멘트 벽은 2~3일 한번씩 세웠다가 부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 작업을 저학년이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폭력의 대물이 일어난다. 교사의 폭력성이 3학년에게 전가되고 다시금 후배에게 가는 것이다. 자기가 후배시절 받았던 고통을 선배가 돼서는 되갚은 하는 현상이다.

전교조 조사에서 훈련일정을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는 3.5%(7명)에 불과했다. 교권이 무너졌다고 하나 직업계고등학교 환경은 아직 90년 초 같다. 여전히 공고하다. 학생과 학부모와 상의하여 결정하다고 하지만 신라공업고등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결국 학교의 의중이 지배적으로 훈련시간을 결정한다. (기능반 운영교 교사 198명이 설문에 참여함. 교사 58명, 교사와 학생, 학부모 67명, 교사와 학생 62명, 교사와 학부모 4명).

기능반에서는 선후배 간 도제식 훈련으로 학교폭력이 대물림되었다. 신라공업고등학교는 기능반 학생들 간에 학교폭력을 숨겼고, 심지어 학생의 학교폭력 이력을 학생이 기능반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 잡아두는 협박용으로 활용하였다. 게다가 기능반 학생 간 ‘성폭력’ 문제를 제보하여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런 기능반 내 폭력 문제는 성장기 학생들의 심리적 파장을 더 키웠다.

학교는 기능반 학생들의 정상적 학습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직종별 대회 과제와 시간은 차이가 있다. 통상 3일 15시간~20시간 과제이다. 대회 준비과정에서 3일 한 번씩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여 작업하면서 대회를 준비한다. 이는 일반 훈련과정과 다르게 느슨한 기능 학습이 아니라 모의고사를 보는 고강도의 집중력과 신체 한계에 도전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단순 기능만 반복적으로 훈련하였다. 기능대회 전까지 메달 따는 기계가 되어서 학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강도 훈련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훈련과정은 기술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고 반복적인 기계적 행위만 남는다. 어찌 이를 두고 실무능력 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능대회 입상자의 인터뷰 기사이다. 질문은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이다. 입상자는 “힘들 걸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아침 7시부터 훈련을 하는데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두 훈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작업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문제점 파악하고 청소까지 마치면 오후 11시가 됩니다. 대회기간에는 새벽 3시까지 훈련을 하기에 정말 힘듭니다. 이런 고된 훈련 때문에 기능반을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시간 기능훈련으로 학생들의 건강권 침해와 수업시간 중 훈련 등 학습권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교조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응답 조합원의 65.7%는 기능반 하루 평균 훈련 시간이 6시간 이상이라고 답했으며 오후 8시가 넘어서야 훈련을 마치는 답변은 86.9%에 달했다. 통상 기능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조합원는 28.8%에 불과했다. 기능반 학생 10명중 7명은 ‘일부 수업만 참여(30.3%)’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40.9%)’ 것으로 나타났다(◦훈련량: 9시간 이상-45명, 12시간 이상-40명 ◦훈련 종료시간: 20시~22시-129명, 22~24시-43명 ◦휴일 훈련 시작: 9시-130명 ◦학습권: 수업이 참여하지 않는다-81명, 일부 참여-60명).

신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쉼 없는 반복노동은 가혹행위와 다르지 않다. 기능경기대회 상위권 입상이라는 화려한 찬사로 가려진 기능대회 준비 과정에서 훈련과 혹사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거듭 그 고통을 호소해 왔다. 기능반 학생들은 고등학교 기초 교과목 학습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장과 발달을 추구하는 ‘고등학교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것이다. 학생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교육적폐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2월의 학교는

2007년 2월 3일 토요일, 대구는 겨울의 끝자락이 가는 시기였지만 그날 낮 12시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스한 햇살로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 2월에 학교의 모습은 1년간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정은 그저 미래의 꿈을 꿈꾸고 사색에 잠기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고 황준혁 학생에게 2007년 2월은 평범한 학생들과 다른 의미였다. 그해 4월 있을 기능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2년간 쉼 없이 훈련했던 하나의 순간에 불과하였다. 방학기간에 토요일임에도 평소와 같이 아침부터 기능훈련에 몰입하였고, 주말 저녁 가족과 함께 보낼 기대감에 부푼 상태였다. 모든 상념을 뒤로 한 채 몸에 익은 작업에 집중해야 했다.

기능대회 훈련과정에서 안전은 후순위로 밀려있었다. 더빨리 과제 수행하기 위해 안전을 확인하는 공정은 생략하기 일 수였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고 황준혁 학생은 위험한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몸에 익혔던 대로 시간 단축하며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였다. 메달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요구되기에 작업 공정을 생략해야 했고, 빠르게 손발을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냉각 장치에 가스를 주입하다가 냉각기 폭발로 뚜껑이 학생의 가슴을 치는 사고가 났다. 사고는 우연히 아니라 필연이었다. 당일 사고 현장에서 고 황준석 학생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후로 13년이 지난 2020년 4월 8일에 또 다른 뼈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3월의 학교는

3월의 학교는 새학년의 기대감에 부푼 시기다. 또한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맺음으로 긴장감도 높은 시기기도 하다.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거쳐야 할 과정이기에 회피보다 잘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림의 여유를 가진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19로 4차례라 걸쳐 등교개학 연기에 대면교육이 아닌 온라인으로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동안 물처럼 흔해서 중요함을 몰랐던 학교라는 공간을 다시금 인식하게 하는 한해였다.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고 이준서 학생에게는 머나먼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기능반 소속 학생들은 ‘코로나19로 등교정지 시기’에도 메달 경쟁을 위해 기능훈련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물리적 거리를 강화하던 시기에 고 이준서 학생은 합숙훈련을 강행하면서까지 죽음으로 내몰렸다. 기능반 학생들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쉼과 삶을 포기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야 했다. 메달을 위한 작은 차이는 혹독한 훈련을 감내해야 했고,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고 이준서 학생이 2020년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교내 합숙을 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들어했던 이유다.

그동안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교육부는 합당한 조처를 마련하지 않고 외면했다. 2020년 4월 8일 밤 고 이준서 학생은 온몸으로 그런 교육부에 경종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하고 있지 못하다. 고 이준서 학생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근본적 이유이다.

1% VS 99%, 또다른 공간에서 경쟁교육

지난해까지 지방기능경기대회에는 28만7000여 명이 참가해 6만9000여 명의 입상자를, 전국기능경기대회는 7만2000여 명이 참가해 9000여 명의 우수 산업인력을 배출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의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산업의 강국으로 발전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공헌한 핵심 숙련기술인이다.(윤정식 한국기능올림픽연구원장, 2020.06.02. 한국경제 기고글)

윤정식의 말을 그대로 해석해보면 지방대회 참가인원 약 28.7만 명 중에서 단 0.9만명(3%) 사람이 우수 산업인력으로 배출되고 있다. 또한 학령인구의 변화와 직업계열과 일반계열 학생의 진학비율이 변화 등 기능대회가 처음 시작된 1967년부터 현재까지 직업계고등학교 입학생은 평균 10만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약 600만명이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기능대회 참가인원이 전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의 5%미만이다.

기능반의 문제는 학생들이다. 1%를 위해 99%의 학생은 버려지는 구조이다. 기능대회 수상은 결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전국 기능대회에서 지난 10년 동안(2007~2016년 통계) 입상자 중 1470명이 대기업에 입사했을 뿐이다. 그나마 2007년부터 특정 대기업이 기능대회를 후원하고 입상선수를 뽑고 있다. 그 기업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한 위상을 가진 회사다. 2007년의 기업의 정치적 타격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지원에 참여한 것이기에 이제는 한계에 붙이쳤다. 지방대회 참가 인원 매년 약 5천 명 인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전국대회 입상자가 진학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일반 수업을 빠진 상태에서 고교 3년간 훈련해도 메달을 따서 대학에 진학하여도 대학교육에 적응할 방안은 없다. 이는 소외되는 시점만 뒤로 밀릴 뿐이다.

고 이준서 학생의 계기로 숨어있던 기능대회의 모순이 알려졌다. 선진산업국가 한국이 육체 기능기술으로 국제사회 위상을 선전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을 도구화 하는 교육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소수 학생에게 해택이 주어지는 메달 경쟁은 학생의 발달을 추구하는 교육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폐쇄적인 구조는 내부의 문제를 않고 곪게 만든다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기능 학습의 결과를 얻어지는 기능능력이 아니 메달 따는 과제 숙달은 정상적인 과정에서 일어나는 직업계고 학생의 기능연마라 볼 수 없다.

고 이준서학생 사망 78일에서야 나온 허울뿐인 개선안 발표에 분노한다.

‘강력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했던 코로나 사태기간에도 등교, 기능훈련 강행’, ‘수업시간에 기능반실에서 기능훈련’, ‘주말, 늦은 밤 시간까지 장시간 고단한 훈련’, ‘동일한 과제를 매일, 매주, 3년 동안 반복적인 기계적 행위(대회 과제)로 청소년 전면적 발달 지체’, ‘폐쇄적인 소집단이 가지는 위계적 폭력구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불법도 용인되는 전근대적인 문화’ 등이다. 그런 상황을 교육부 중등직업교육정책과와 경북교육청 창의인재과는 합숙 훈련 사실이 확인되어도 행정 지도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육부의 포괄적 등교 중단 지침에도 훈련을 강행한 학교들을 개별 학교의 문제로 치부한 교육부와 경북교육청의 인식이 오늘의 사태를 키운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 직업계고등학교 기능경기대회 준비과정에 교육이란 없다. 비교육을 넘어 반교육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발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금메달 상금을 1,2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조금 낮추고, 학생부와 일반부 분리, 정규수업 후 저녁 10시까지 기능훈련, 기능반은 전공심화동아리로 운영하고, 방학 때 대회를 운영하며, 단기해외기술연수로 보상하고 전국대회 참가 학생을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교육부 지침으로 내려간 내용을 그대로 대책이라고 발표하는 무책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대책에 허탈함을 넘어 분노한다.

우리 요구와 기대를 저버리고 메달경쟁 기능만 남은 기능경기대회에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을 계속 내몰겠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기능대회 출전 선수의 95% 가량(2019년 기준 전국기능대회)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부와 일반부를 분리는 불필요한 경쟁완화가 아니라 ‘분리 경쟁’일 뿐이다.

두 학생이 죽음으로 보여준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죽음의 사슬을 끝내지 않고 미래로 미루고 있다. “기능반을 정규 ‘전공심화동아리’로 구성‧운영”,“기능반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여” 등은 현재 교육부 지침이다. 기능반을 ‘전공심화동아리’라 변경해 부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취업이라는 유인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능반 활동을 독려하였다. 하지만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같은 대기업 입사가 기능반 학생들 앞에 놓인 상황이다. ‘자율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기능반 활동’은 현실 앞에서 무력화된 지는 오래전 일이다.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자고 한 것은 수 십년째 같은 이야기 반복이다. 이런 직업계고의 취업 경쟁교육은 기능반 구성원들의 폭력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억압하는 환경을 낳았다. 불법도 용인되고 눈 감는 일이 일어났다.

교육부는 특혜와 차별, 그리고 메달 경쟁을 부추기는 기능반이라는 폐단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잔가지를 손보는데 그치고 있다. 지방대회 2월, 전국대회 8월에 치룬다고 기능반 학생 구성원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1~3까지 소수집단이 형성한 폐쇄적 환경을 그대로 존속하는 잔인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기관평가로 성과주의에 빠지게 한 문제, 실적 경쟁을 부추기는 문제, 메달에 따른 부가적 혜택이 삐뚤어진 교육환경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누차 기능경기대회 개선을 위한 선결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는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반교육적인 행태까지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이익으로 공동체 공동의 선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충격적인 모습은 코로나19 사태로 등교했던 사례, 심지어 2차 대유행이 걱정되던 5월 14일에도 다수학교에서 등교한 사실이 있다. 이 와중에도 ‘기능훈련 동의서’를 문제의식 없이 작성한 교육공동체들의 현실을 직시하였다. 아직도 기능경기대회 입상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학교의 민낯을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기능경기대회 개선안은 현장의 변화를 이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하고 있다.

기능반 학생들의 학습권(수업 참여)과 건강권을 위한 보호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업 참여를 보장할 구체적인 기준은 미루어졌다. 현재도 수업 참여는 학생의 의무다. 그럼에도 기능반 운영과 기능경기대회 준비 앞에서 학습권과 수업 참여는 간단히 무너졌던 것이다. 실효성 없던 정책의 되풀이일 가능성이 높다. 학생의 건강권을 고려하여 밤 10시 이후 훈련금지라고 쓰고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승인하면 야간 및 휴일 훈련도 가능하다는 예외를 두어 코로나19 정국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동의서로 합숙훈련을 시켰던 문제의 판박이다. 훈련시간의 원칙적 제한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기능반 학생 학습권(수업 참여)과 건강권(밤 10시까지 활동 보장)도 수업 참여를 보장할 어떠한 기준도 없이 대책이라고 발표하여 달라진 것이 없다. 즉 그동안 실효성 없었던 교육부 공문과 같은 ‘알맹이 없는 정책’이다.

과제출제를 문제은행 방식으로 전환하면 과도한 경쟁구도를 완화한다는 대책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기술을 테스트하는 곳에서 왜 예상문제를 미리 주고 그것을 훈련하게 하는 것인가? 우리의 암기식 입시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있지 않다. 기술력을 위한 기초지식과 그 응용력을 충분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대회로 구성해야 직업계고 학교 수업이 정상화되는 것이 아닌가?

교육부 발표 이후 전교조와 공대위, 정의당에서 공식적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의 내용에 대해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기자들이 끈질기게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기능반이 비공식 특별반으로 운영하는 학교도 있어 공식화하자는 차원이며, 수업권 보장은 지침 수준이기 때문에 이후 시도교육청, 한국산업인력공단(실제 기능대회 집행 기관)과 함께 모니터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도 교육청이 (학교별) 운영계획서를 점검해 학습권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강력한 제제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이면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체 일탈 화법이다. 우리는 지침 내렸다. 관리 책임은 외주화 하겠다. 학교별 운영계획서는 학교가 작성하니 그에 맞게 운영하지 않으면 학교를 처벌하겠다. 이것이 현교육부의 계획이다.

제대된 교육, 인간해방을 위한 교육으로

학교 경쟁교육에 밑바탕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고용은 경쟁적 구조가 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별짓기 하면서 누구나 정규직을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직이 만연한 사회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더 좋은 고용을 추구하는 것은 생존경쟁과 다름없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교육이 경쟁적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선망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을 바로 세우자라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회를 교육으로 바꿔보려는 우리들의 시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밀약이 되고 있다는 전망을 가지고 오늘도 살고 있다.

학생이 노동할 관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직업계고에 현장실습 참여 학생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제와 사회 체제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이다. 개인의 선택지가 좁아서 이른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일에 내몰리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교육사회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강요된 선택이 아닐지라도 개인 수준에서 조기 노동이 필요하다고 하여 전체 교육 기본 전제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한 요구가 아니다. 교육행정 편의주의와 관료주의 등에서 벗어나 학교의 구조적 모순과 학생과 교사가 만나는 학습환경을 냉철하게 분석해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교육이 인간의 발달과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의 본모습을 되찾는데 직업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는 교육이 인간 해방으로서 위상을 확립해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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