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당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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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회의 주인인 사회구성원들 위에 그 누구도 군림할 수 없는 평등사회를 추구한다. 또 누구나 생존권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GDP 세계 12위로 경제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장 수준 노동시간과 최고 산재 사망률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 경향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매일 목격하며 몸으로 겪고 있는 이 현실은 어제오늘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윤추구를 지상 명제로 내세우는 자본의 출현 이래 노동자들은 언제나 무자비한 수탈과 착취의 제물이었다. 실업과 저임금,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는 자본축적의 기본 조건이었다. 자본과 노동 간의 피할 수 없는 근본적 모순과 적대관계는 화해와 타협을 말하는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현실적으로 비웃어 왔다. 한국 사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양극화는 이명박⋅박근혜 시절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인 박정희 시절부터 이미 한국사회의 불문율로 자리 잡아 왔다.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극복을 주요 과제라고 선언했으나 실질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재벌 중심의 성장정책을 고수했다. 현정부도 그 기조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삼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 결과 노동인구의 절대다수가 종사하는 중소기업들이 재벌기업과의 불공정 관계에 시달리는 하청 위치로 내몰려 왔고, 수많은 노동현장은 지금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요구하는 전쟁터로 남아 있다.

1997년의 금융위기는 비정규직양산 정책 추진의 계기로 악용되었다.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불충분한 대응으로 인해 노동운동의 윤리적 기반에 금이 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 영역에서 서열구조가 굳어져 왔다. 그로 인해 노동운동에는 분열과 관료화의 위험이 상존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동안의 경제성장과 투쟁의 성과 덕분에,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살 만큼 산다는 감각이 퍼졌고, 그에 따라 노동운동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늘어났으며, 차별과 서열 관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인간관⋅사회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노동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미래사회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교육 분야와 일상생활의 의미를 규정하는 사상과 문화 영역까지 잠식해왔다. 노동자 민중 스스로도 공존과 공유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존중하기보다 무한경쟁과 패권적 욕망을 절대시하는 풍토 속에서, 불평등의 사다리 구조 자체를 허물어 버리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부와 가난의 대물림을 당연시함으로써, 현재의 지배 관계를 고착시키는 데에 일조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노동자 민중이 무한한 희생을 치르며 쟁취한 경제적 조건들조차 결코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앞서가는 자본주의 나라들의 성장 둔화 내지 장기 불황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과학기술발전을 통한 생산력 증대나 시장 확대 혹은 개도국에서의 노동력 착취에는 늘 한계와 위기가 따른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하하는 자본 대비 산출되는 이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은 부인할 수 없다. 첨단기술 개발을 활용한 이윤증대는 일시적이며, 한때 앞질러 가는 기술경쟁력은 언제라도 다른 개별 기업이나 국제적 집단자본 혹은 다른 국가자본에 의해 추월당할 수 있다. 경쟁적 과잉중복투자로 인한 비효율과 생산 마비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런데 무한증식은 자본의 본성이며, 증식을 포기한다면 자본은 이미 자본이 아니다. 축적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자본 권력이 그에 따르는 고통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여 증식을 고수하려 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력 증대에는 인력감축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무한증식 본성에 따라 폭주해온 자본주의는 이제 생산력 증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축적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축적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방법이 대량해고 사태와 절대 빈곤층의 확산 수준에 머물지, 이미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재앙을 더욱 증폭시킬지, 인류문명을 일거에 파멸로 몰고 갈 대규모 전쟁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은 엄존한다. 이미 현대차는 40% 인력감축을 들먹인 바 있으며, 삼성이 주도하는 5G와 AI가 초래할 대량실업의 규모는 예측을 불허한다. 후쿠시마에서 열린 환경재앙의 지옥문은 어디서든 더 큰 규모로 활짝 열릴 수 있다. 자원⋅시장⋅노동력 등을 놓고 벌어지는 제국주의적 경제전쟁은 언제라도 직접적 군사충돌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은 결코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 전체가 중대 선택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을 절대화하고 이에 순응하며 자본 권력의 처분에 인류의 운명을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자본도 인류의 긴 역사 속에 등장한 하나의 가변적 요소, 하나의 변수일 뿐이라고 보고 우리가 자본을 이성적⋅효율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극단적 인종차별, 약소민족에 대한 약탈, 전 지구적 환경재앙과 전쟁을 부추기는 제국주의의 야만에 고분고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평등과 단결의 노동자 국제주의 정신에 따라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추구할 것인가. 이미 이룩했고 또 앞으로도 이루어낼 과학기술과 생산력을 활용해 소수 자본가들을 위한 낙원과 절대다수 노동자 민중을 위한 지옥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누구나 인간답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우리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극소수가 노동자 민중을 개돼지 취급할 수 없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불가능한 사회, 자본축적과 부의 독점을 위한 무자비한 착취와 자연파괴와 전쟁을 지구상에서 종식시킨 사회, 인류가 이루어낸 문명의 산물들을 누구라도 향유 할 수 있는 사회, 소외된 노동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성 발현을 위한 활동으로 모든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한 마디로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까지 인류가 이룩해낸 무궁무진한 생산력과 문화유산들, 다양한 해방운동⋅노동운동⋅혁명운동⋅사회주의운동의 성과들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또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 건설에 맞서는 제국주의적 자본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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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제국주의적 자본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방법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나 중국식 국가 주도 시장경제 혹은 구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 등등 어느 하나의 역사적 정치형태가 우리의 유일한 모델이라고 미리 단정하지 않으며 그 문제점들을 의식한다. 그렇다고 그 어느 것이든 일괄해서 쓸모없다고 배제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배워서 받아들여야 할 것과 비판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들을 선별하여 이 시대 우리의 조건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이때 우리는 다음의 원칙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첫째, 우리는 자본의 지속 가능한 효율적 착취와 증식을 위한 개량이 아니라, 자본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회, 궁극적으로는 자본 권력이 사라짐에 따라 그것을 제어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자본증식의 한계와 이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식한다면, 부분적 개량으로 인류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자본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회가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지를 면밀히 구상하는 일은 기존의 자본증식을 절대 상수로 전제하는 재벌 연구소들이나 이들에게 의존하는 정부연구기관들 혹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들에 맡겨놓을 수 없다. 그것은 자본과 불가피하게 모순 관계에 처해 있는 노동운동의 당면과제다. 우리는 개인과 정파의 입장을 넘어서, 자본주의 너머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가고자 한다.

둘째, 우리는 자본 권력의 근본적 제어를 위한 실질적 조치로서 노동자 민중이 주인인 국가, 즉 노동자국가를 건설코자 한다. 오늘날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존재감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노동자 민중이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교사, 공무원, 교수까지 노동조합을 만들고 민주노총에 가입해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볼 때,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자본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고자 한다.

셋째, 노동자국가의 일차적인 과제는 국내 및 국제 자본 권력의 반격을 제압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건드리는 사소한 개량조치에도 자본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자본이 아무리 그 증식의 위기와 한계를 절감한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국가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 권력을 제어하고자 할 때 국내외의 자본 권력이 총력을 다 해 저항할 것은 자명하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국가는 생사를 건 전쟁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 전쟁을 회피한다면 노동자국가는 출발조차 불가능하다. 현실사회주의는 이 인류사적 전쟁의 전초전에서 패배했지만, 우리는 패배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자 한다. 자본의 반격을 제압하는 것은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국내외 자본 권력의 반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노동자 민중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하지만, 그뿐 아니라 노동자 국제주의에 의거한 국제적 연대도 필수 불가결하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무분별한 경쟁과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인류 공멸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획기적으로 확대⋅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자국가에서는 완전 고용을 전제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며, 주택⋅의료⋅교육 등의 기본생존권을 사회가 책임진다. 이미 19세기 중엽에도 당시의 생산력이면 전체 노동인구가 1일 5시간 노동에 종사하면 물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해 인류는 100여 년 투쟁했으며, 러시아 10월 혁명을 통해 비로소 8시간 노동제는 국가 차원에서 실현되었다. 오늘의 생산력이면 4시간 노동제로도 전 인류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시간의 보편적 축소는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간 차별은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자본 권력의 제어를 통해 가능해지는, 이윤증대가 아닌 사용가치 중심의 경제는 자연착취체제를 탈피해,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이룰 것이다. 이는 산업구조의 재편을 통한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해소, 농업 존중 등을 통한 주택문제의 근본적 해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까지의 무상교육은 교육의 공공성 강화, 서열 폐지, 장기적으로는 욕망구조의 전면적 재구성 등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다섯째, 노동자국가에서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사회구성원들 위에 군림할 수 없어야 한다. 우리는 지배자의 얼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배관계 자체를 없애고자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이지만, 그 영향은 다양한 영역에 스며들어가 있다. 민족적⋅성적⋅지역적⋅종교적 갈등과 차별, 장애인과 노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밑바탕에서는 예외 없이 경제문제가 함께 작동한다. 자본 권력이 근본적으로 제어된다면 오늘날의 여러 지배관계들도 획기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만이 사회적 권력인 것은 아니다. 정치 권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개 자본 권력의 대리자일 뿐이지만, 자본주의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후에도 살아 움직일 것이다. 따라서 지배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 또한 민주적으로 제어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국가는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만 아니라 그 밖의 어떤 권력도 소수가 다수 사회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데에 악용될 수 없도록 하는 확실한 장치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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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 풍요로운 평등사회는 물론이고 그 전제조건인 노동자국가조차 당장 건설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여파로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조차 노동자국가에 대한 공감을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준비가 없다면 아무리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어도 노동자국가 건설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가능한 아래 준비 작업에 매진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자본주의 너머 새로운 사회, 즉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모습을 정책 차원에서 구체화하고자 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노동자 민중만 아니라 극소수 지배자들을 제외한 절대다수 국민이 충분히 공감할 만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우리는 노동자 민중과 각계각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전문연구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다. 아울러 노동운동과 다양한 해방운동의 성과들, 현실 사회주의 체험들,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실현되고 있는 앞선 제도들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실패한 운동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피하지 않는다. 그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심지어 적으로부터도 배울 것은 배우고자 노력한다. 아울러 정파와 노선 혹은 조직의 경계를 넘어서 노동운동 전체의 협업을 지향한다. 이 작업을 지속적⋅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공신력 있는 연구⋅검증기구 설립을 추진코자 한다.

둘째, 우리는 자본 너머의 미래 사회 모습이 구체화 되어감에 따라 그 결과를 노동자 민중과 널리 공유하고 공감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는 개별 노동조합과 산별노조, 혹은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적인 교육⋅선전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대중 매체들과 제도들을 활용해 우리가 얻은 경험과 인식을 널리 공유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성공적인 공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 민중 각자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들과 어떤 관계를 지니며, 자본 권력에 대한 근본적 제어가 왜 불가피한지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 탄압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함으로써, 그리고 노동자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다양한 현안들의 의미를 자본의 관점이 아닌 노동의 관점에서 심도 있고 면밀하게 해명하고 문제해결에 헌신함으로써, 노동자 민중과의 신뢰 관계를 확대해 간다. 노동자 민중과의 폭넓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노동자국가의 건설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회적 억압으로 인한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갈 것이다. 또한 그 고통의 증상 해소만 아니라 근본 원인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노동자 민중이 함께 확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노동운동 내부 분열의 극복과 단결 투쟁을 추구할 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사회적 억압에 맞선 운동과도 적극 연대하고자 한다. 노동운동이야말로 자본 권력에 대항하는 중심세력이지만, 사회적 억압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만큼 이에 맞서는 저항운동의 형태도 다양하다. 우리는 그러한 억압들이 근본적으로 자본 권력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작동하는지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그에 맞선 저항운동들이 협소한 영역에 머물지 않고 근본적인 사회변혁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경로를 넓혀간다. 따라서 오늘날 각 부문 운동들 고유의 의의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되, 부문들 사이의, 또 각 부문과 노동운동 사이의 경계선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운동과 제반 해방운동들의 일시적이고 느슨한 연대를 넘어선 유기적 결합을 추구한다.

넷째, 우리는 연대의 범위를 노동자 국제주의로까지 넓히고자 한다. 오늘날 거대 독점자본들은 국가 단위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국경을 초월하여 다국적 자본으로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한국의 독점자본이 제국주의적으로 발전해가고 이로 인해 국제적 긴장과 위기를 초래하는 것을 저지하는 운동의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국가를 세우는 데에는 노동자 국제주의의 성장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국가가 건설되어 자본 권력을 사회적으로 제어하게 될 경우, 자본 권력의 반격은 다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반격을 성공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범세계적 자본축적 위기로 인해, 광범한 국제 교류로 인해, 또 첨단 정보통신기술로 인해 노동자 국제주의의 성장 가능성은 나날이 증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름만 남거나 미미한 수준으로 위축된 노동자 국제주의의 부활과 확산 및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

다섯째, 우리는 노동자국가 건설 준비과정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노동자국가는 자본독재체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현할 것이다. 이는 운동 과정 속에서 노동자 민중 각자가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익힘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현재 노동자 민중 각자의 욕구나 의식은 동일한 성격을 띠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 가운데에는 자본 권력의 본질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명확히 의식하고 자본으로 인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보다,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자본의 편에 서서 이 운동에 맞서는 사람들이 더 많다. 따라서 운동에 앞장선다는 의미의 전위 개념을 간과할 수 없다. 전위의 자격은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당면과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고 그 해결을 위해 헌신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자본축적의 위기가 첨예화되고 사회적 재앙이 눈앞에 닥치더라도, 전위들의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사전 활동 없이 노동자 민중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시에 변혁 운동에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노동자 민중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참여 없이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의 의식과 욕구 내지 체질 혹은 자발성의 내용을 바꿔 가는 것이 전위의 가장 본질적인 과제다. 그러나 전위를 어떤 폐쇄적인 조직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누구라도 전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하고 확장적인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자신이 만나는 누구라도 전위로 만드는 일 또한 전위의 주요 과제라고 본다. 전위의 주요 과제에는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배우고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의 신뢰를 얻어가는 것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이처럼 서로를 발전시키는 운동 과정을 통해 노동자 민중 각자는 모두 운동의 적극적 주체가 되고 미래사회의 주인으로 변신해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건설되는 노동자국가야말로 명실상부하게 민주국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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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직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가 만들어 낸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했다. 자본 권력은 법과 제도, 적절한 생활 수준, 제도교육, 대중문화, 언론매체, 종교와 정치조직 등 다양한 무기들을 활용해 노동자 민중을 현재의 지배관계 속에 묶어두고 있다. 노동자국가를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가려는 운동은 외견상 매우 미미하여 자본 권력과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분열된 채 자본주의적 사다리 구조에 의문조차 품지 않고 변혁을 꿈도 꿀 수 없게 된 상태는 운동을 거부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는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거쳐 오며 인류가 쌓아온 경험 자체가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자본증식을 위해 그동안 발전시켜온 고도의 생산력과 자본증식의 한계 및 위기가 초래할 사회적 재앙, 또 그로 인해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 떠맡아야 할 고통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우리 운동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근거 없이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극적⋅효율적으로 투쟁하는 만큼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다가갈 것 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 바쳐 이 투쟁에 임할 것이다.

2020년 6월 27일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전선